일단 실패다. 쫄았다.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컨트리뷰팅 에디터였을 뿐이지만 맵스(MAPS)는 20대의 나에게 많은 기회와 인연을 선물해 준 소중한 ‘전 직장’이다. 매달 2-3개의 인터뷰 기사를 썼는데, 맵스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인 도연 오빠와 당시 디렉터였던 지영 언니는 인터뷰이 선정을 오롯이 내게 맡겼다. 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만났다. 대화해 보고 싶은 사람을 섭외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인터뷰라는 명분으로 친구를 찾아 나선 것 같다. 그중 몇몇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뉴욕 오기 며칠 전 도연 오빠에게 연락했다. “한동안 뉴욕에 있을 건데 재밌는 일 같이 만들어 봐요.” “좋지~ 인터뷰해도 좋고.” 레코드샵 Rough Trade에서 하는 런던 기반의 신인 밴드 The Molotov의 공연을 보자마자 맵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인터뷰할 수 있냐고 물었다. “오늘은 공연이 하나 더 있어서 시간이 빠듯하고, 일요일 오후 공연 끝나고 어때?” 콜. 집에 가는 길에 도연 오빠에게 밴드 영상을 보냈다. “너무 좋아! 하자 하자!”
그런데 내가 영어로 인터뷰를 할 수 있나? 해 본 적이 있던가? 없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게 언제지? 어언 8년 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 안 하고 일단 저지르는 건 나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AI가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는 마당에 못 할 게 뭐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일요일 오후 3시. 만 서른넷 이지현, 대부분의 일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런 종류의 일은 보통 잘 해결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언제나 처음은 어렵다. 30분 분량의 질문을 준비했다. 인터뷰 끝나고 시계를 보니 16분 지났다. 뒷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빨리 집에 가서 발 씻고 눕고 싶다. 그들의 말을 거의 못 알아들은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고 런던식 영어는 원래 알아듣기 어렵다. 녹음해 뒀으니 아무 문제 아니다. ChatGPT가 번역해 줄 것이다.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인터뷰하겠다고 해서 한국 망신만 시킨 거 아냐?’ 최대한 여유 있는 표정으로 그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이가 든 걸까. 대기업 생활의 여파일까. 무언가를 잘 못 하는 상황에 예전보다 취약하다. 20대 때는 머리 긁적이고 말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침울해진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걸까. ‘서른넷이나 되어서 이만큼 밖에 못 해?’ 하는 불만인가. 무엇을? 8년 만에 하는, 그것도 영어로 하는 인터뷰를? 부당하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보겠다고 나선 나를 칭찬해 주진 못할망정, 잘하지 못했다고 꾸짖는 건 너무 부당하다. 침울함을 거둔다. 씩씩하게 걸어본다. 격려 차원에서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의 할로윈 특별판 ‘펌킨 스파이스 푸딩’을 사 준다. 아찔하게 달다. 오늘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