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규칙은 뭐로 하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이건 너무 뻔하고 이건 너무 쉽고 이건 무리고... 스트레스 받기 시작한다. 놀러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람. 고생은 사서 해도 스트레스는 안 된다. 날씨가 화창하니 일단 나가야겠다.
피스타끼오 크로와상이 맛있어 보였던 빵집을 구글 맵스에 찍고 걷는다. 햇빛이 대단하다. 선글라스를 두고 나와 눈이 부시지만, 그것마저 호사롭다. 길 건너에 귀여운 무늬의 레미콘이 보인다. 아빠 생각이 난다. 그저께는 온통 초록색인 레미콘이 있길래 사진 찍어 가족 단톡방에 보냈다. “아빠 차도 칠해줄까?” “ㅎㅎ 괜찮아.” 다시 고요해진 단톡방에 말을 붙여보려 레미콘 사진을 찍는다.
‘여러 나라의 레미콘 사진을 모아도 재밌겠네.’ 오? 여러 나라의 레미콘 운전사 사진을 찍어도 재밌겠다. 창문 너머로 뭔가를 먹고 있는 운전사가 보인다. 좀 더 다가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손짓으로 허락을 구한다. 내 카메라는 28mm 단렌즈. 여기서 찍어서는 안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길을 건너 레미콘 바로 옆까지 간다. 아직도 멀다. 사이드미러를 잡고 차 위로 올라탄다. 아빠 레미콘에 타 봤기에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 한 손에 피자빵을 든 운전사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창문이 열린다. “우리 아빠가 한국에서 레미콘 운전하거든. 그래서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의 레미콘 운전사 사진을 찍고 있어.” 지금 막 찍기 시작해 놓고 나도 모르게 뻥을 친다.
“이름이 뭐야?” 루이. 레미콘 운전 24년 차다. 한 달에 얼마 버냐고 물으니 살짝 당황하더니 “세전? 세후?” 한다. 세후 8,000달러. “와, 우리 아빠보다 훨씬 많이 버는 거 같은데!” “세전은 11,000달러야.” 으쓱해 하는 모습이 정감 있다.
오늘은 이걸로 됐다. 이게 뉴욕에 온 이유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하게 된다. 하고 싶어진다. 오늘의 몫을 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다시 빵집을 향해 걷는다. 큰 경적이 들린다. 루이가 창밖으로 손 흔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피스타끼오 크림이 가득 찼대도 크로와상이 무려 8.5달러, 환율 1,400원 기준 11,900원이다. 수입 없는 장기 여행자로서 손 떨리는 금액이지만 자비롭고 아름다운 내 친구 임다운이 후한 구독료를 보내주었기에 과감히 블랙커피도 한 잔 시키고 팁도 냈다. 맛은 어땠냐고? 할 수만 있다면 뉴스레터 친구들에게 배민으로 하나씩 보내주고 싶다. 고마워 다운아! 추신. 구독료들 보내시라는 얘기 진짜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