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사려고 줄 서 있는데 옆에 있는 아저씨가 물병 뚜껑을 떨어뜨렸다. 줍지 않고 보고만 계시길래 주워 드렸다. 건네면서 보니 몸이 불편해 보인다. 카다멈 번과 사워도우 롤을 샀다. 서울에서 안 먹어본 빵이다. 먹고 가고 싶은데 만석. 아저씨가 자기 테이블에 앉아도 된다고 눈짓하신다. 이번엔 에어팟을 떨어뜨리셨다. 주우려고 노력해 보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오히려 발로 밟아 고무 커버가 빠졌다. 주워드렸다.
“Are you Korean?” 어떻게 아셨냐고 하니 서울로 출장을 많이 다니셨단다. 인도 사람인데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뉴욕, 런던, 홍콩, 도쿄 등 세계 곳곳에 살았다. 서울은 출장으로만 가서 여러 번 갔음에도 아는 게 별로 없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회의하다가 코리안 바베큐 먹고 호텔 가서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은퇴했고 싱가폴에 산다. 할 건 없지만 살기 좋은 도시다. 안 가봤다고 하니 따로 여행 올 필요는 없고 싱가폴 항공 탈 일 있을 때 스탑오버 하라고 하셨다. 관심 있을진 모르겠지만 동물원이 잘 되어 있다고.
뉴욕엔 아들네 만나러 왔다. 두 살배기 손녀가 예뻐 죽겠다. 아이폰 사진첩엔 온통 손녀 사진이다. 아들과 랍스터롤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커피 한 잔 하러 왔다. 아들이 데리러 올 거다. 아내는 친구 만나러 갔는데 어차피 마요네즈 알레르기 있어서 랍스터롤을 못 먹는다. 덕분에 오랜만에 자유시간이 생겨서 혼자 길게 산책했다.
4년 전에 뇌졸중이 와서 오른쪽 반이 마비됐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안 울었다. 나아질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아들, 런던에 있는 딸이 날 만나러 싱가폴까지 왔을 때 눈물이 났다. 그제서야 나한테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너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정작 당사자는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실감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날이 내가 마지막으로 운 날인 것 같다. 보통 아이들에 관한 일에 눈물이 난다. 영화 보고 운다면 아마 아이들에 대한 영화일 거다. 이번에 손녀랑 헤어질 때 울지도 모르겠다.
싱가폴에선 여가 시간에 뭘 하시냐, 여쭈니 웃으며 여가 시간이 없다고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 후 CNN과 BBC를 시청하고, 운동한 뒤 씻고 나면 점심 먹을 시간. 그 후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한다. 그리곤 무슨 클럽에 가서 뭔가를 한다고 하셨는데 못 알아들었다. 어쨌든 이것저것 하고 나면 잘 시간이라는 거 같다. 이제 더 물어볼 게 없는데 데리러 오기로 한 아들이 영 안 온다. 올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주식 공부를 좀 했기에 공부한 티를 내 봤다.
“나스닥이 계속 상승세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보세요? 거품이 심하다고 일부 매도해서 현금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던데.” 이런 질문을 하는 내가 어찌나 어색하면서도 기특하던지. 그는 (내가 알기론) 워런 버핏이 할 법한 정석적인 답변을 했다.
- 미국 주식 시장은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결국에는 우상향한다.
- 그렇기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추세에 맞춰 단타 치면 안 된다. 그 누구도 흐름을 예측할 수 없다.
- 폭락했을 때의 패닉, 폭등했을 때의 탐욕을 경계하는 게 중요하다.
- 그 어떤 때에도 시장에서 빠져나오면 안 된다. 시장 안에 있어야 한다.
- 나는 자산의 10%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추가 매수한다. 시장이 회복되면 일부 매도해서 다시 현금 비중을 10%로 맞춘다.
아들이 왔다. 인물이 아버지만 못 하다. Apple TV+ <Ted Lasso>에 나오는 닉 모하메드 닮았다. 67세 Bhupesh Gupta와의 유쾌했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