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한테 집밥 얻어먹기 (실행 편)
“You are pretty good at networking." Andy가 말했다. 아닌데? 라고 하려다 생각해 보니 뉴욕에선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찾아 나선다. 오늘은 심지어 쓰레드에서 알게 된 사람의 집에 밥 얻어먹으러 간다.
노바울, 89년생. 사진가. “집에 초대해 주실 분 계시면 맛있는 와인 들고 찾아갈게요.”라는 나의 포스팅에 ”관심 있습니다! “라고 댓글 달아줬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이 궁금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부터 사진 찍었고 지난 3월 우연한 기회에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다. 사진 작업은 필름으로 한다.
테이블 위에 수육 한 접시가 놓여있다. “죄송해요.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조금만 앉아 계세요.” 수육이라니. 냉장고에 있는 반찬 휙휙 꺼내 한 끼 뚝딱하는 장면을 상상했는데 황송해진다. 주방에 가보니 김치부침개가 익고 있다. 냄비에선 정체 모를 육수도 끓는다. 십여 년 전 뉴욕에서 유학 중인 친구네 집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한인 마트에서 사 온 김치로 어설픈 김치찌개를 끓여줬었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 살았다. 런던에서 학교 다니다 군대에 갔는데 어쩐지 돌아가기 싫어 뉴욕으로 옮겼다. 이제 거의 10년째. 뉴욕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집세, 생활비 벌기 위해 투잡, 쓰리잡 하기도 한다. 학교 졸업하고 1년은 작업 하나도 못 했다.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뉴욕에 사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디 있느냐 보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제 그걸 느낀다. “저는 그래도 환경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아니라 사람 얘기인데, 치열하게 작업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자극, 할 수 있는 대화 그런 게 있잖아요.”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말해도 직접 해 봐야 마음이 해소될 테니 오셔라. 평생은 모르겠지만 몇 년은 살아 볼 만한 곳이다.
알고 보니 H마트에서 사 온 수육과 직접 만든 김치부침개를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잔치국수까지 내어준다. 칼질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썬 듯한 채소 고명이 푸짐하다. 정겹다. “사실 두 번째 해 보는 거예요. 와이프가 잔치국수를 잘하는데….”
바울의 아내는 다큐멘터리 촬영하러 한국에 갔다. 그래서 다른 친구도 같이 초대했는데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못 오게 됐다. “어딘데? 택시비 내 줄테니까 와.” 곤란해 보였다. “남자친구한테 여럿이 가는 거라고 하고 왔는데 큰일 났네요.” 대화의 시작이었다. 모처럼 편했다.
작업을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걸로 돈을 벌어야 전업 작가인데 팔리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안 할 거 아니니까. 사는 동안 계속할 비싼 취미라고 생각하려 한다. 뉴욕엔 그런 사람이 많다. 헤어질 즈음에야 그의 사진을 봤다. 이런 게 사진가의 사진이구나 했다. “제가 마침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죠. 사진은 여러 장 찍다 보면 잘 찍은 거 하나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