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맥락에 들어서면 체면이 사라진다. 34년을 산 내 나라에서는 그래도 성취라 부를 게 있어서인지 언젠가부터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이제 그런 걸 하긴 좀 그렇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차츰 덜 시도했다. 뉴욕에서 나는 아무도 아니다. 나를 보증하는 것이 거의 없다. 백지. 무엇을 그려도 이상하지 않다. 뭐라도 그려보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의 나보다 지금의 나로 설명해야 한다. 그게 나를 다시 당돌해지게 했다.
뉴욕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떻게 오게 됐어요? 어떤 비자로 있어요?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해요? 반복해서 묻다 보니 길이 보인다. 까마득한 고생길이지만 있기는 있다. 12년 전 대학생 땐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방법이 없었다. 방법을 찾고 나니 다음 질문이 따른다. “진짜 여기 와서 살고 싶어?”
살고는 싶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다. 하고 싶은 게 많다. 그중 어떤 게 더 나에게 중요한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은 포기할 수 없나. 포기해야 하나? 안 그럴 방법이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의 첫 한 달은 가능성을 찾았다는 데 의의를 두자.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알아서 드러나게 둬 보자. 어느 날 불현듯 알게 될 것만 같다.
삶은영화와달라서모든순간이결말을위해존재하지않는다. 어디가결말인지알수도없다. 그순간이전부다. 오늘마음두근거렸으면, 눈빛이반짝였으면됐다. 그이상은욕심이다. 지난한달많이설레고감탄하고즐겼다. 그여정을알게모르게함께해 준 뉴스레터 친구들에게감사하다. 계속 씩씩하게 잘 놀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