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랑 사우나 가기
“그래서 오늘의 규칙은 뭐야?”
“동네 친구랑 사우나 가기.”
“푸하하, 그게 무슨 규칙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잘 모르는 미국인과 수영복을 입고 또 다른 미국인들로 가득한 소셜 사우나에 가는 게 나에게는 ‘규칙 지키기’라는 동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국인인 너는 모를 수 있다. 안 해 본 일이라면 죄다 해 보고 싶은 나지만 서로의 말을 80%, 어쩌면 그보다 적게 알아듣는 상대와 75분의 사우나 타임을 갖는 건 ‘그래, 해 보자!’ 하는 작은 다짐이 필요하다. 게다가 난 사우나 별로 안 좋아한다.
요즘 뉴욕에서는 사우나가 유행이라고 한다. 말차가 유행하는 것과 같은 흐름으로 보인다. 웰니스, 그놈의. 건강한 삶을 지향하지만 웰빙, 웰니스 등의 키워드를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만드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강한 몸과 마음마저도 돈으로 사야 하는 상품처럼 느껴지게 한다. 카페라떼가 5달러면 말차라떼는 7달러고, 오늘 다녀온 사우나는 75분에 64달러다. 난 공짜 쿠폰이 있었다. 집에 있는 바닥 평평한 운동화 아무거나 신고 나가서 매일 한 시간씩 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건강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 들러 철봉에 1분 매달리면 금상첨화. 20만 원 훌쩍 넘는 쿠션 빵빵한 러닝화가 허리 망치는 주범이라 하더라.
사우나 경험이 마음에 안 든 건 아니다. 사실은 인상적이었다. 째려보는 마음으로 들어가선 감탄하고 나왔다. 역시 잘하는구나. 들어설 때부터 나올 때까지 접하는 거의 모든 것이 하나의 컨셉에 연결되어 있다. 인테리어 자재, 조명 디자인, 직원의 태도, 풍기는 향, 무제한 제공되는 차의 구성까지 'Creating space to shift states through peak experiences'라는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와 맞아떨어졌다. 터키산 모슬린으로 만든 큰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들어가자, 자신을 안내자라고 소개하는 남자가 삼십 여명의 사람들을 이끈다. 첫 20분은 사우나에서 하는 명상 세션이다. 안내자의 멘트에 맞춰 음악과 조명이 바뀐다. 향도 바뀐다. 그의 말투와 표현, 그 안의 분위기가 너무 미드스러워서 약간 오싹했다. 영화 속에 빨려 들어온 기분이랄까. “현재에 머무르라”길래 잡생각을 치우고 시키는 대로 숨을 마시고 내쉰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당신이 힘들었던 순간에 당신 앞에 나타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 감사한 마음을 두 손에 모아 보세요. 심장으로 가져가 보세요.” …… 결국엔 그들이 바라던 대로 “자신을 마주했다.”
자신을 마주하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쉬운 건 일기 쓰기 같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을 줄줄 써도 좋고 자기 전에 하루를 반추하며 써지는 대로 끄적여도 좋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나도 모르던 내 생각이 글자로 나타난다.
웰니스적 소비보다는 웰니스적 생활이 유행하면 좋겠다. 일기 쓰기, 나가서 뛰기, 햇볕 쬐기, 가공식품 안 먹기, 술/담배 줄이기, 웃기, 친절하기. 돈 들이지 않고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이 수두룩하다. 공짜 쿠폰으로 잘 놀고 와서 불평을 늘어놓자니 머쓱해진다. 여러모로 잘 만들긴 했다. 그래도 또 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