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집밥 얻어먹기 (섭외 편)
혼자 잘 논다. 혼자 하는 여행은 도가 텄다. 그렇지만 문득 깊이 쓸쓸해지는 순간이 있다. 창문 너머로 하하호호 대화하며 밥 먹는 사람들을 볼 때 그렇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던 어느 저녁, 이 규칙을 만들어 뒀다. 정성스레 차린 집밥을 앞에 두고 와인 한잔하고 싶었다. 하루 안에 실행하기엔 난이도가 높으니 마땅한 사람을 만나면 시도해 보기로 했다.
페이스트리가 맛있다는 제보를 듣고 찾아간 카페 WatchHouse. 점심시간 직후라 그런지 앉고 선 사람들로 복작복작한데 코너에 서서 그림 그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날이었으면 가서 말 걸었을 수도 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시끄러웠고 할 일이 많았다. 한 시간쯤 일을 하다 고개 들어보니 어느새 내 오른편에 서서 그림 그리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봤다.
“오늘 여기 되게 시끄럽다.”
“그런데도 집중 잘하시네요.”
“매일 하다 보면 익숙해져.”
“매일 여기에서 그림 그리세요?”
“돌아다녀. 요즘엔 스튜디오에 박혀있는 게 싫어서.”
Daniel Ackroyd, 매사추세츠 출신. 국제학교 교사 자격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아내는 과학 선생이다. 최근엔 상파울루에 살아보려고 갔는데, 너무 시끄럽고 범죄도 잦아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롱아일랜드 시티에 있는 아내가 물려받은 집에서 지낸다. 도쿄와 상하이에서도 살았다. 국제학교는 어느 나라든 내외부를 미국식으로 꾸며놓는데, 상하이는 달랐다. 중국 전통 건축물이라서 정원과 연못이 아름다웠다. 한국엔 가 본 적 없지만 친숙하다. 80년대의 뉴욕에선 식료품점을 한국 사람이 거의 점령하다시피 해서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인과 교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지냈어요? 그때 배웠다.
“저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데 재능은 없어요.”
“그림은 언어 같은 거야. 매일 하면 유창해져.”
“매일 할 만큼 좋아하는 게 재능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지. 유화는 특히 그래. 매일 그리지 않으면 벌을 내려. 넌 무슨 일을 해?”
다큐멘터리. 회사. 여행 중. 뉴스레터. 규칙들. 소개하고 여쭈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집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하하, 재미있는 규칙이네. 그래! 여기로 연락해.” 메일 주소를 건넨다. 자신의 화판에 내 이름을 받아 적는다. 다음 주에 마침 뉴올리언스에서 아들이 오니 시간 맞춰 보자고 하신다. 아들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자라 미국인 같지가 않다고, 그래서 너무 좋다고. 이렇게 ‘섭외 편’은 성공. ‘실행 편’의 성공 여부와 후기는 커밍 순이다.